원추리
씨앗 및 모종 구하기
원추리는 들이나 산에서 많이 자란다. 번식은 씨앗이나 포기나누기로 가능하므로 모양 좋고 마음에 드는 원추리를 봐두었다가 꽃이 지는 늦여름이나 가을에 씨앗을 받거나 봄에 포기나누기를 한다. 정원이나 화단에 원추리 몇 포기가 있으면 그 주변에 씨앗이 떨어져 자라는 포기를 옮겨 심는다. 여러 해 지난 포기는 뿌리가 많이 번성하므로 포기나누기 해도 된다. 최근에는 야생화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주변의 화원에서도 화분을 구입할 수 있다.
관리(풀 정리, 웃거름주기, 병충해)
이른 시기에 싹을 틔우기 때문에 초기에 풀이 주는 어려움은 덜하다. 그러나 자라면서 잎줄기가 크지 않고 꽃대만 자라므로 잎이 풀에 묻혀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아래에 있는 풀을 정리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가끔은 원추리 꽃대에 진딧물이 많이 붙어 있는 경우도 있다. 어느 정도 비옥한 곳에서 잘 자라므로 봄에 한 번 정도 웃거름을 준다. 포기에서 20㎝ 정도 떨어진 곳을 호미로 약간 긁어내고 퇴비를 한주먹 넣고 다시 흙을 덮어둔다. 옮겨 심을 때, 밑거름보다는 웃거름을 주는 편이 쉽고 관리하기도 편하다. 즉, 웃거름을 줄 때 풀도 정리해 포기 주변에 덮어두면 수분유지에 도움이 된다.
야생원추리는 산과 들판의 경계부나 밭둑에서 많이 자란다. 봄에는 해가 잘 들고 여름에는 다소 그늘이 지는 곳에서 잘 자라는 편이다. 이와 같은 특성을 이용해 조경용으로 관상수 아래에 심거나 조경석 사이에 심어 정원을 가꾸는 재료로 많이 이용한다.
원추리
시름에 지친 이들이여 나에게 오라, 너무 좋아 넘나물이라네
원추리를 잡초 대열에 끼운다면 원추리 입장에서는 억울할 것이다. 왕이 거지가 된 꼴이니까. 하지만 원추리만 속상한 것은 아니다. 잡초계에서도 천덕꾸러기로 전락하여 저항체를 키워 살아가는데, 자태만만한 이가 멋모르고 군림하려고 하다가 미움을 받아 사라질지도 모른다.
물론 잡초계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누군가 자신의 영역에 들어오면 입지를 강화하고자 싸우는 인간과 달리 잡초들은 오히려 함께 살아가기 위해 입지를 좁힌다. 잡초계에는 상생의 원리와 다양성의 원리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나는 원추리를 잡초계에 끌고 들어와 잡초와 상생하게 만들려는 게 아니다. 원추리는 요즘 도시 사람들에게는 정원에 있는 예쁜 '꽃'으로만 알려져 있다. 하지만 원래 원추리는 8~9월에 산과 들에 군락을 이루어 피어나는 야생화다.
야생화가 도시형 정원으로 들어갔으니 얼마나 갑갑하겠는가? 관상용이 된 원추리처럼 도시 사람들의 생활도 갑갑하기는 마찬가지다. 시멘트 공간을 오가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일상 자체가 스트레스다. 어쩌면 도심에 갇힌 원추리는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용감하게 탈출할 것을 권유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산야에 가면 주황색과 노랑색 꽃을 피우며 군락을 이루고 있는 원추리를 볼 수 있다. 원추리꽃의 수명은 하루뿐이다. 꽃이 지고 나면 타원형의 열매가 맺힌다. 뿌리는 맥문동과 닮아 가늘고, 방추형의 육질 덩이뿌리가 여러 개 달려 있다. 예전에는 중요한 구황식물의 하나였다. 멧돼지도 원추리 뿌리를 즐겨 먹었다. 뿌리는 의남초(宜男草)라고 하여 아들을 낳게 해주는 영험이 있다고 알려졌다. 그래서 아들 없는 부인들이 몸에 지니기도 했다. 원추리 땅속줄기에는 녹말이 많아 선조들은 허약체질을 튼튼하게 하는 자양강장 음식으로 쌀·보리 같은 곡식과 섞어서 떡을 만들어 먹었다.
여름에는 꽃을 따서 술을 담거나 김치를 담가 별미로 먹었고, 밥 할 때 원추리꽃을 넣어 독특한 향기가 나는 노란 밥을 짓기도 했다. 요즘에는 원추리꽃의 향료를 추출하여 화장품이나 향수를 만들기도 한다. 원추리는 '넘나물'이라고 부른다. 넘나물은 원추리의 어린 순으로 대표적인 봄철 산나물의 하나다. 맛이 달착지근하고 연하며 매끄러워서 감칠맛이 있는 순하고 담백한 산나물로 훤채(萱菜)라고도 부른다.
넘나물의 달고 시원한 맛 때문에 정월 대보름에 국을 끓여 먹음으로써 새해에 떨떠름하고 근심스러운 모든 시름들을 떨치곤 했다. 그래서 망우초(忘憂草)라고도 부른 모양이다. 스트레스와 시름이 많은 현대인에게 원추리는 꼭 필요한 식재료다. 우울증에 시달리는 이가 있다면 일상적인 음식으로 먹어도 좋다. 넘나물의 어린싹을 생으로 먹어도 되고, 국을 끓이거나 튀김으로 해서 먹어도 좋다. 10센티미터 정도 자랐을 때 수확하여 어린싹을 먹으면 좋다.
어린잎은 녹즙의 원료가 된다. 원추리 데친 것을 기름에 볶기도 하고, 늙은 잎은 이뇨제로 이용한다. 중국에서는 꽃을 금침채(金針菜), 황화채(黃花菜)라 하여 샐러드로 이용한다. 꽃을 먹을 경우는 꽃이 피기 전에 봉오리를 수확하여 먹는 게 좋다. 마른 꽃은 소주에 술을 담가 자양강장, 피로회복제로 사용한다. 꽃을 상처 난 곳에 붙이면 상처가 아문다. 꽃과 전초를 달여 류마티스와 강심약, 위염, 황달 및 간질병 치료약으로 먹기도 한다. 잎, 줄기, 꽃, 뿌리 등을 달여 먹으면 주독을 푸는 데 효과적이다.
원추리는 생명력이 강한 식물이어서 토질이나 위치를 크게 가리지 않고 잘 자란다. 씨와 포기나누기로 번식하며 씨는 가을에 채종해서 바로 뿌리거나 저장했다가 봄에 뿌리면 잘 발아한다. 포기 나누기는 한여름과 겨울만 피하면 어느 때나 가능하다. 농사는 문전옥답이다. 농사꾼의 텃밭에 원추리를 심어보자. 이른 봄, 한 해 시름없는 농사를 짓게 해 달라고 넘나물을 먹고, 노랑·주황의 꽃이 피면 꽃차를 만들어 마시고, 뿌리를 캐어 떡도 해 먹으면서 시름없는 한 해를 보낸다면 얼마나 좋을까?